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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역사사전

[세계의 역사] 민족주의와 산업혁명

by 축구 도감 2023. 3. 23.

1. 민족주의 1790~1900년

프랑스혁명은 유럽을 뿌리째 뒤흔들었다. 어떠한 군주도 감히 국민의 뜻의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나폴레옹은 1804년 스스로 프랑스 황제에 올라 시대정신을 인식했다. 그는 독재자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시민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하고 공교육을 시작했으며 세제를 정비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언론을 탄압하고 반대파를 감옥에 보냈으며 입법부를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했다. 그는 민족주의자였지만 혁명가는 아니었다. 열심히 싸우고 승리하는 시민군은 그에게 헌신했지만 프랑시에 더욱 헌신했다.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패배와 재앙을 맛보았다. 그를 반대하던 연합세력은 유럽에서 기존 군주를 보호하겠다고 서약함으로써 구체제를 복원하려 했다. 그러나 민족주의자들의 열정은 진압할 수 없었다. 그리스인은 1829년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하여 권리와 자유를 추구하는 정신을 고취시켰다. 1848년 혁명적 열기는 파리, 빈, 베를린 같은 도시에서 절정에 달했고, 그 시기 '공산당 선언'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민족주의의 부상으로 급진적인 변화나 민주적 개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독일은 프로이센 정치가 오토 폰 비스마르크에 의해 통일되었는데, 그는 새로운 독일 제국을 건립하기 위해 영토 확장 전쟁을 벌였다. 독일, 새롭게 통일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러시아 등의 군주 하에 서 제한적인 권력을 가진 입법부가 도입되었다. 민족주의느 강력한 문화적 영향을 미쳤다. 교육이 널리 보급되면서 여성이 문학의 주도세력으로 떠올랐고, 나아가 권리를 위해 싸우기 시작했다. 여성은 프랑스혁명에서 자신들을 정치에서 추방했던 공포정치기까지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공포정치기에 처형당한 여성 중에는 '여성의 권리선언'을 작성한 올랭프 드 구즈도 있었다. 같은 시기에 영국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권리 옹호'를 출간했다. 19세기 중반에는 여성이 영국과 미국에서 투표권 획득을 추구하여, 1893년 뉴질랜드에서 처음 결실을 맺었다.

 

시몬 볼리바르 

독립운동 지도자. 스페인 제국이 쇠퇴하면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을 본보기 삼아 독립을 추진했다. 1810년 멕시코와 남아메리카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이를 주도한 사람은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였다. 1820년대까지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국가가 해방되었고, 브라질은 포르투갈에서 분리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정치적 미래는 불투명했다. 볼리바르는 1826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볼리비아공화국을 설립한 후페루의 독재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그란콜롬비아, 현재의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나마,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남아있었다. 1828년 반란이 일어나자 그는 그란 콜롬비아가 제국주의 열강에 지배당할 만한 작고 약한 국가들로 분열되는 것을 막고자 독재 권력을 행사했다. 그는 1830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죽었고, 그란콜롬비아는 그의 우려대로 분열되었다.

 

2. 산업혁명 1765~1900년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영국은 근대 산업의 최초 연료였던 철광과 석탄의 매장량이 풍부했고, 민간 기업과 투자를 장려하는 정치체제가 수립된 상태였다. 영국은 또 새로운 기업경제가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다 가내공업이 번성하고 있었다. 일례로 작업자들은 집에서 수공으로 방적하여 모직물과 면직물을 만들었다. 제임스 와트가 1760년대에 증기기관을 완성하고 방적작업에 증기동력이 적용되면서, 섬유산업은 호황을 맞이했다. 가내공업 대신 공장이 들어섰고, 근로자의 생산성이 급증하면서 이익을 창출하고 투자자를 끌어들여 기업들이 장비를 구입하고 더 많은 공장을 건설할 수 있게 되었다. 1800년대 초에 도입된 증기기관차는 공장을 도시, 항구, 석탄 광산과 연결시켰다. 19세기 동안 산업혁명은 유럽 전역을 비롯하여 미국과 일본 등까지 널리 퍼져나갔다. 산업화의 초기 영향력은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러다이트 운동으로 알려진 시위자들은 대대적인 실업을 우려하여 기계를 파괴시켰다. 아이들도 숨 막히는 먼지와 팔다리가 잘리기 십상인 기계에 노출된 채 하루 12간씩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1842년 영국 맨체스터를 방문했던 어떤 사람은 팔과 다리가 잘린 수많은 사람들을 '전쟁에서 갓 돌아온 패잔병'에 비유했다. 산업화와 인구과밀로 도시가 석탄 매연에 잠기고 하수와 오물로 가득 차면서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 돌았다.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을 추진하려는 노력은 좌절되었다. 이러한 벙폐에 제시된 처방전으로는 로버트 오언의 공상적 사회주의부터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까지 다양했다. 오언은 스코틀랜드와 인디애나에 이상적인 산업 공동체를 수립했던 영국 제조업자이며, 카를 마르크스는 1948년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공동으로 '공산당선인'을 썼던 독일 정치철학자다. 그는 이 책에서 계급투쟁이 벌어져 프로레타리아 독재와 궁극적으로 계급 없는 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예견했다. 마르크스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산업적, 과학적, 정치적 진보로 생활환경과 근무조건이 개선되면서 임금이 올라가고 노동시간이 단축됨에 따라 노동자들이 얻게 될 이득이었다. 1831년 영국인 마이클 페러데이는 자기력을 전기로 바꿀 수 있는 전자기유도 법칙을 발견했다. 이로써 1800년대 말까지 모든 도시에 전기가 보급되었고, 1890년대에는 이탈리아의 마르코니가 개척한 전기신호를 이용해 전신, 전화, 무전을 통한 통신이 가능해졌다. 비슷한 시기에 독일의 루돌프 디젤 등이 석유를 동력으로 한 내연기관을 완성하여 공장과 선박의 증기동력을 대체했고 자동차와 비행기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중대한 발명들 덕분에 산업사회는 이전 사회보다 훨씬 강력해졌고, 그 결과 세계의 대부분이 소수 거대세력의 영향력 또는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도시화

산업혁명이 전행되면서 대부분의 공장이 위치한 도시지역으로 대규모의 이주민이 이동했다. 1800년에는 영국인의 5명 중 1명만이 도시에 살았지만, 1850년이 되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 일대에 거주했다. 기계화와 기타 농업의 발전으로 더 적은 농민만으로도 도시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되었다. 증기선과 철도로 국제무역이 용이해지자 국가들은 식량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초기 도시들은 전염병에 시달렸지만, 정수처리와 하수시설 등이 개선되면서 결국 수백만의 사람들이 밀집된 공간에서도 안전하게 어울려 살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