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1500~1650년)
르네상스는 중세 말기에서 유래했다. 14세기 피렌체를 비롯해 번영하던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상인들의 과거로부터 영감을 끌어왔던 예술가와 시인들의 후원자로 나섰다. 그들은 가톨릭 수도원에 간직된 고전기 그리스-로마 문학과 비잔티움 및 이슬람 세계의 문헌에서 영감을 얻었다. 피렌체에서 성장한 사람들 중에는 시인 단테, 화가 지오토 디 본도네, 학자 페트라르카가 있었다. 그들의 작품은 유럽의 '신앙의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다. 르네상스는 예술가 미켈란젤로와 화가, 발명가,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업적으로 150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인본주의자들은 인간의 지적능력과 상상력으로 이해하지 못할 만큼 신비롭거나 신성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공유했다. 르네상스기의 과학자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우주론 등의 사상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로써 성경의 창조론 등 신앙의 기본 전제를 궁극적으로 반작하는 과학혁명이 시작되었다.
종교개혁이란?
종교개혁은 1517년 독일의 신학자였던 마르틴 루터가 신자들이 죄를 사면해 준다는 면죄부 판매 등의 관행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개신교도들은 교황과 사제직의 권위를 부인하고, 교구 주민과 훨씬 비슷한 삶을 살면서 15세기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인쇄기로 출간된 모국어 성서로 설교하는 목사를 임명했다. 모국어를 사용하고 인쇄하면서 또한 영국 시인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같은 위대한 르네상스 작가의 작품이 배출되었다. 개신교는 많은 식자층이 성서를 기반으로 가톨릭의 교리에 의문을 제기했던 북유럽의 도시지역에서 발전했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북부의 개신교 국가들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1618년 독일의 개신교도는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을 함께 통치하던 합스부르크 왕조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30년 전쟁이 발발했고, 결국 합스부르크 왕조가 독일 신민들에게 종교적 자유를 부여하면서 전쟁이 끝났다.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 1558년 즉위해 사망할 때까지 영국을 통치한 엘리자베스 1세는 종교개혁의 산물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헨리 8세는 남자 후계자를 절실히 원하여 앤 블린과의 결혼을 추진했지만 교황이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을 허락하지 앉자 1533년 로마와 관계를 끊어버렸다. 앤 불린은 후에 엘리자베스 1세를 낳았다. 엘리자베스 1세는 여왕으로서 가톨릭교회와 청교도주의 사이에서 중도노선을 착취하면서 온건한 형태의 개신교를 인정했다. 처녀 여왕으로 알려진 그녀는 스페인의 펠리페 2세 등 외국의 구혼자를 물리침으로써 영국의 자주권을 보호했다. 펠리페 2세는 나중에 영국을 정복하고 가톨릭교의 지배권을 회복하기 위해 영국 함대를 파견했다. 이 무적함대를 격퇴하면서 영국은 막강한 스페인 제국과 겨룰 만한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2. 신세계
스페인은 방대한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획득하며 신세계 식민지 건설을 주도했다. 콜럼버스가 시작한 카리브해의 식민지 건설은 천연두와 기타 수입된 질병으로 원주민을 파괴시켰다. 추출할 금이 더 이상 없어지자 식민지 개척자들은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너무나 많은 노예를 들여와서 인구 대부분이 아프리카계로 변했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아스텍과 잉카 제국을 무너뜨리고 약탈함으로써, 자신과 왕의 부를 축적했다. 쿠바의 식민지 건설을 도운 후에 에르난 코르테스는 1519년 600명을 이끌고 멕시코로 건너가서 원주민들이 아스텍 제국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는 1521년 천연두 유행병이 퍼지는 동안 테노치티틀란을 공격하여 아스텍 수도를 약탈하고 불태운 후 그 자리에 멕시코시티를 건설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1533년 같은 전술을 페루에서 사용하여 잉카 제국을 정복하고 수도인 쿠스코를 장악했다. 방대한 양의 은이 남아메리카와 멕시코에서 스페인 왕실 재원으로 쏟아져 들어왔지만, 멕시코 북부로 진출한 정복자들은 원주민 제국에서 대단한 부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곳의 식민지 건설은 고립된 선교단과 마을을 건설했던 스페인 수도사와 정착자들에게 맡겨졌다. 1680년에는 뉴멕시코의 푸에블로족이 스페인인을 축출했다. 이에 식민지 건설자들은 되돌아와서 푸에블로인들과 화해하고, 원주민과 함께 적대 부족에 대한 원정을 수행했다. 스페인-아메리카 제국을 통해 스페인 식민지 건설자들은 인디언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들의 노동력을 활용했다. 영국의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다른 방식이 지배적이었다. 1607년 최초의 영구 정착이 이루어졌던 제임스타운 지역이 있는 버지니아에서 식민주의자들은 알곤킨족과 투쟁을 벌여 그들을 쫓아버렸다. 담배 같은 작물을 재배하는데 원주민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대신, 영국의 계약 하인이나 흑인 노예를 활용했다. 매사추세츠에 정착했던 청교도인 또한 원주민을 쫓아내고 땅을 침범하여 1675년에 맹렬한 반란을 야기했다. 원주민 전사들은 600명의 식민지 개척자를 주였고, 그 후 영국인들이 강력한 이로쿼이족의 도움을 받아 그들을 격퇴했다. 이윽고 이로쿼이족도 앵글로-아메리카 정착자들에게 패하여 밀려났다. 영국 식민지 개척자들은 워낙 많은 인원이 몰려와 원주민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인을 포함한 다른 유럽인까지도 대체했다. 네덜란드인은 1664년 영국이 그곳을 장악하기 전에 뉴욕에 정착해 있었다. 북아메리카에서 그들의 주요 경쟁자는 1608년 본격적으로 캐나다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프랑스인이었다. 프랑스의 정착민들은 수적으로는 열세였으나 인디언과 동맹을 맺어, 캐나다에서 미시시피 강을 따라 뉴올리언스까지 막대한 영향권을 확보했다. 1713년 프랑스는 뉴펀들랜드, 노바스 코샤 등의 지역을 그레이트브리튼에게 잃었다. 그러다가 남아 있는 북아메리카 토지를 1736년 프랑스-인디언전쟁이 끝난 시점에 영국에 넘겼다. 이러한 세력에도 영국은 아메리카 식민지들이 1775년 반란을 일으켜 독립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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