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와 페르시아
기원전 500년 에게해 동쪽 해안에 살던 그리스인이 페르시아의 지배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면서, 당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사회까지의 반목이 시작되었다. 그리스 문명은 북쪽의 미케네인이 남하하여 그리스 본토와 미노아인의 본거지였던 크레타 섬 등을 정복한 후로 1천 년 넘게 지속된 상태였다. 미케네 문명과 미노스 문명의 상속자인 그리스인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같은 강력한 도시국가를 수립하고, 멀리 있는 해안가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페르시아는 키루스 대왕 때부터 인더스 강에서 나일 강과 흑해에 이르는 거대 제국을 세우면서 번영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522년에 왕위에 오른 다리우스 1세는 영토를 여러 지역으로 나누어 각 지역을 관리하고 세금을 거두어들일 사람을 임명했다. 페르세폴리스의 웅장한 수도와 에게해의 에페수스까지 가는 도로에 부과된 세금이었다. 그리스 도시들이 다리우스 1세에게 저항했을 때, 아테네는 이들을 원조하여 기원전 490년 마라톤에서 페르시아 군을 격퇴했다. 다리우스 1세를 승계한 크세르크세스 1세는 그 후 친히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했으나, 아테네가 스파르타 등의 그리스 도시들과 연합하여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함대를 무찔렀다. 그리고 1년 후에는 크세르크세스 1세마저 격파함으로써, 페르시아의 팽창이 끝나고 그리스의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아테네는 모든 성인 남자 시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여 민주주의를 발전시켰고, 당대의 미술가, 극작가, 시인, 철학자의 작품은 서양 고전문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기원전 338년 필리포스 2세가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이 그리스를 정복했고, 그의 야심 많은 아들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까지 공격했다. 다른 마케도니아 귀족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에서 공부한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제국을 차지해 버렸다. 알렉산더 대왕이 32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그의 대제국은 장군들 사이에 분할되었고, 그리스의 학문은 중동의 문화유산에 속하게 되었다. 이 유산은 5세기에 붕괴되어 비잔틴 제국에게 동부 지중해의 패권을 넘긴 로마 제국보다도 더 오래 살아남았다.
알렉산더 대왕
고대 그리스의 영웅이다. 젊은 시절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밑에서 공부했던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 문화를 사랑했고, 트로이 공격의 전설적인 지도자인 아킬레스의 추손임을 주장하면서, 스스로 그리스의 영웅임을 자처했다. 그러나 그리스인은 마케도니아 출신의 알렉산더를 그저 외국인 군주로 여겼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그리스의 도시 테베에서 반란에 직면했고, 수천 명을 살육하고 나머지는 노여로 만드는 등 철저한 진압을 했다. 이후 그리스 최대의 적인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나서야, 그는 그리스인의 영웅이 되었다.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인들은 그를 해방자로 환호하며 맞이했다.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한 후에 그는 그리스를 모델로 한 도시를 건설했다. 그중 최고의 도시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였다.
2. 로마 (기원전 500년~기원후 500년)
티베르 강 유역 언덕에 위치한 로마는 기원전 509년에 이 일대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에트루리아에서 독립하면서 그 역사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로마인은 에트루리아인 왕을 몰아낸 후에, 귀족들이 선출한 두 명의 집정관이 1년간 통치하는 공화정을 수립했다. 처음에는 원로원의 귀족들이 집정관을 결정했기 때문에 일반 평민은 권력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평민들도 호민관과 두 집정관 중 한 명을 선출할 권리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여전히 남아있는 계급 간 갈등에도 불구하고 평민 계급이 로마의 성공에 일익을 담당하면서, 로마 군단에서 충실하게 복무하고 종종 자신이 정복한 땅을 얻는 평민들이 늘어났다. 기원전 265년이 되자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장악하고 시칠리아를 넘보기에 이르렀다. 로마의 권위에 복종하는 적군은 관대한 처분을 받고 일부 로마시민이 되기도 했지만, 계속 저항하는 세력은 철저히 진압당했다. 로마에 가장 반항적이었던 세력은 페니키아인이 세운 북부 아프리카 도시 카르타고였다. 카르타고는 스페인과 서부 지중해 연안을 지배했고, 제1차 포에니전쟁에서 시칠리아를 놓고 로마와 싸웠다. 한니발 장군의 영웅적인 활약에도 불구하고, 카르타고 결국 전쟁에서 패했다. 로마인은 기원전 146년에 이 도시를 완전히 불태운 후에 그 잿더미를 갈아엎고 소금을 뿌려, 아무것도 다시는 자랄 수 없게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100년에 로마는 그리스를 정복하고 지중해의 지배자가 되었다. 정복 과정에서 부와 영예를 얻은 로마 장군들은 점차 원로원에 거역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관철시키기 시작했다. 기원전 49년에는 프랑스에서 갈리아를 쳐부순 율리우스 카이사르 장군이 로마로 돌아와 권력을 잡고 독재자로 군립했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공화정을 지키려는 세력에게 암살당하면서 내전이 시작되었다. 이 권력 다툼은 기원전 31년 카이사르의 조카인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동맹을 격파하고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부여받으면서 마침내 끝이 났다. 그는 로마의 최초 황제로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둘렀다. 그의 후대에도 세력 확장을 계속한 결과, 2세기경 로마의 영토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영국까지 뻗어 있었다. 3세기 들어 로마 국경을 넘어오는 침략자들이 급증하년서, 이 거대한 영토는 긴장상태에 빠졌다. 로마 제국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기독교의 세력은 확대되었다. 당시 기독교도들은 신성한 황제에 대한 예찬을 거부하고 더 높은 권위를 섬겼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포용하고 330년에 방어에 더 유리한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면서, 로마는 기존 난공블락의 이미지를 상실했다. 5세기에 중앙아시아에서 동유럽으로 진출하던 훈족은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하던 반달족, 서고트족, 기타 게르만 부족을 쫓아냈다. 로마는 4767년에 멸망했고, 로마의 유산은 콘스탄티노플과 비잔틴 제국으로 전수되었다.
유대교인, 기독교인, 로마
1세기에 로마령이었던 고대 유대의 유대교인은 로마의 지배 하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로마에서는 황제가 신격화되었지만, 최고의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교에서는 우상 숭배가 금지되어 있었다. 일부 유대교도는 로마 지배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줄 메시아나 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렸다. 나사렛의 예수는 로마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으나, 신의 왕구이 지상의 모든 제국을 초월한다고 예언했다. 예수가 죽은 후에 그가 메시아라고 믿었던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은 종교적 박해를 당했다. 이에 유대교인이 저항하자, 로마는 70년 예루살렘을 약탈하고 유대교 신전을 파괴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 장군 및 정치가. 유리우스 카이사르는 당시 알프스 지방에 살던 켈트족인 갈리아인을 진압하면서 권력을 잡았다. 켈트족의 문화는 기원전 1000년경에 다뉴브 강 상류에서 시작되어 프랑스를 거쳐 북부 이탈리아와 스페인과 영국 제도까지 전파되었다. 켈트족은 철제품 제작에 능숙하고 가공할 만한 전사들이었지만 단결력이 부족했다. 카이사르는 북부 이탈리아 출신의 갈리아인 용병을 모집해 병력을 보강함으로써, 프랑스 일대의 반항적인 갈리아인을 진압했다. 갈리아인을 이끌던 베르킨게토릭스는 사슬에 묶여 로마로 강제 호송된 후에 결국 처형당했다. 카이사르는 약 100만 명으로 추정되는 갈리아인 포로를 잡아들였고, 이들을 노예로 팔아 엄청난 부를 축적함으로써 군대의 충성심을 얻고 권력을 유지했다. 갈리아를 시작으로 그는 영국과 이집트에서 계속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다. 기원전 46년에 종신 독재관이 되었지만 2년 후에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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