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세 500년~1000년
중세시대는 500년경 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시작하여 1500년경 신세계(남북아메리카)의 탐험으로 끝났다. 중세 초기는 암흑기라고 불리는데, 게르만족이 로마령을 점령해 가면서 사건을 조명할 만한 문서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콘스탄티노플에 기반을 둔 비잔틴 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 치하에서 번영하면서 확대되고 있었다. 565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사망할 때에는 비잔틴 제국이 거의 지중해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로 비잔틴 총대주교보다 로마 주교를 종교적 지도자, 즉 교황으로 여기는 기독교인이 득세한 이탈리아에서 지배력을 잃고, 또 한창 제국을 수립해 가던 무슬림 통치자에게 밀려나면서 비잔틴 제국의 세력은 점차 위축되었다. 이슬람교는 570년경 아랍인 예언자 마호메트가 태어난 메카에서 기원했다. 그는 상인으로 넓은 세상을 여행하면서 유대교와 기독교를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사십 대에 접어들어 알라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최고의 신임을 인정하고, 알라에게 복종한다는 의미고 이슬람교를 수용하라는 계시를 경험했다. '세상에서 유일한 신은 알라이며, 마호메트는 그의 예언자다' 그 후로 무슬림은 계속 이렇게 선언해 왔다. 630년에 마호메트와 그의 추종자들은 망명에서 돌아와 메카를 정복했고, 메카의 가장 신성한 신전인 카바는 독실한 무슬림이 반드시 거쳐야 할 순례지가 되었다. 마호메트가 632년에 사망하자, 칼리프라는 이슬람 통치자들이 이슬람교 하에서 아라비아를 통일하고, 정복과 개종을 통해 그들의 신앙을 전파했다. 8세기가 되자 이슬람 세계는 북아프리카에서 스페인까지 확장되었다. 750년에 아부 알 아바스가 다마스쿠스 중심의 우마이야 왕조를 타도하고 바그다드 기반의 아바스 왕조를 건설했다. 많은 곳에서 코란뿐 아니라 의학서와 수학서 등 페르시아, 그리스, 인도의 고전 저작을 연구하려는 학자들이 몰려들었다. 아라비아 숫자와 대수학은 이런 무슬림 학자들이 현대 과학에 남긴 선물이다. 서유럽은 샤를마뉴 대제가 등장할 때까지 여러 게르만족 집단으로 분열된 상태였다. 768년에 프랑크 국왕이 된 그는 프랑스와 독일을 넘어 이탈리아와 북부 스페인까지 영역을 확장했으나, 북부 스페인에서 로마가톨릭교 프랑크족에게 저지당했다. 샤를마뉴 대제는 800년에 로마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서로마 황제로 대관을 받았지만, 그가 죽은 후에 제국은 분열되었다. 유럽은 농노가 영주에게 의무를 수행하고, 영주는 봉건제 사회를 유지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왕이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바이킹은 특유의 좁고 긴배를 타고 사방을 돌아다니며 약탈과 거래를 일삼고 아이슬란드와 노르망디 등을 식민지로 삼았던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모험가들이었다. 노르망디는 그곳에 정착했던 고대 노르인에서 이름을 따왔다.
시아파와 수니파 무슬림
마호메트가 사망한 후 그의 제자들은 누가 이슬람교 지도자를 계승하느냐에 대한 논쟁을 벌였다. 일부는 마호메트의 사촌동생이자 사위인 알리를 칼리프이자 종교적 지도자로 지지했다. 마호메트의 마지막 아내인 아이샤를 비롯한 사람들은 다른 후보를 선호했다. 알리는 656년에 이슬람의 제4대 칼리프가 되어 661년 암살당할 때까지 이슬람 세계를 통치했다. 시아파 무슬림은 알리의 후손이 후대칼리프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알리의 뒤를 이은 우마이야 왕조에 반대했다. 수니파 무슬림은 마호메트의 후손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공정하고 독실한 칼리프를 정통으로 인정했다. 이 두 분파는 의식과 교리에서 차이가 있어, 이슬람 세계의 지속적인 분열을 발생시키고 있다.
2. 중세 1000년~1500년
중세 후반부에 기독교 유럽인은 중동에서 무슬림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성지 예루살렘에서 전쟁을 일으킨 십자군도 양 세계의 분열에서 탄생했다. 1000년경 중앙아시아의 셀주크투르크족이 중동으로 몰려와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1055년 투그릴 베그라는 투르크인이 바그다드에서 술탄이 되었다. 그 후 정복활동에 착수하여 후대에는 강력한 무슬림 경쟁자 파티마 왕조에서 시리아인과 팔레스타인인을 포로로 잡고, 아나톨리아까지 진출하여 비잔틴 군대를 격파했다. 그러자 비잔틴 황제 알렉시오스 1세가 서유럽에 원조를 요청했고, 로마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이에 응답했다. 교황은 당시 로마가톨릭교회와 소원하던 동방정교회와 화해하고, 무슬림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의 성지이기도 한 예루살렘을 확보하여 동부 지중해에서 자신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했다. 1095년 그는 투르크인을 공격할 십자군 원정대를 소집했다. 중동 일대의 혼란으로 성지순례를 떠나기가 불안해지면서 투르크에 대한 원성이 높던 상태라, 많은 신자들이 교황의 부름에 응했다. 제1차 십자군은 '은둔자 피터'라는 광신도가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군대를 이끌고 처참한 패배를 당하면서,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그동안 프랑스 귀족들이 강력한 전투부대를 모집하여 마침내 1099년 예루살렘 점령에 성공했다. 그 후 십자군은 동부 지중해를 따라 국가들을 차지했다. 투르크가 그중 하나를 탈환하면서 1147년 제2차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었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결국 술탄 살라딘이 1187년 예루살렘을 무슬림의 손에 되돌려주었다. 그 후로 가톨릭 십자군은 성지를 재탈환하지 못했고, 1204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함으로써 동방정교회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비잔틴 제국은 이후 계속된 투르크의 공격 앞에 무력해졌다. 십자군 전쟁은 군사적 목적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아시아의 매혹적인 상품을 유럽에 소개하여 교역로를 여는 데 기여했다. 베네치아와 피렌체 같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아시아와의 무역으로 번영했고, 마르코 폴로 같은 상인들은 중국을 여행했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아시아와의 육상 무역을 장악했다. 이에 유럽인은 극동과의 해상 무역로를 개척하고자 아프리카를 향해하고 대서양을 넘어 신세계로 진출했다.
흑사병이란 무엇인가?
선페스트는 원래 설치류를 감염시키던 벼룩이 옮기는 치명적인 병으로, 1347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와 대혼란을 초래했다. 림프절이 부어오르는 증상이 특징으로, 림프절의 또 다른 이름인 'bubo'도 이 병에서 유래했다. 이 병은 사망 직전에 환자의 몸을 뒤덮는 검은 종기 때문에 흑사병이라고도 불린다. 유럽의 흑사병은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게 발생했던 페스트로, 14세기의 인구를 몰살시켰다. 이 끔찍한 전염병으로 유럽에서 2천만 명 넘게 사망하면서, 유럽 대륙의 인구가 4분의 1 이상 줄었다. 그러자 사회는 광란에 빠졌다. 일부지역의 기독교인들은 페스트를 유대인 탓으로 돌리고 그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유럽은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였다. 흑사병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며 삶았다. 처음에는 환자 격리에 그쳤던 페스트 치료방법도 점차 질 높은 병원과 의학 치료로 발전했다. 또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노동자들이 더 높은 입금을 받게 되어 생활수준이 향상했다. 1450년경에는 기독교도가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프랑스, 영국, 스페인 같은 왕국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세력을 모으고 있었고, 곧 전 세계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잔 다르크
프랑스의 구국영웅. 백년전쟁에서 어떠한 영웅도 잔 다르크라는 이 젊은 여성보다 더 큰 존재감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농부의 딸인 그녀는 1400년대 초에 북부 프랑스를 점령한 영국군에 대행해 프랑스인의 저항심을 고취시켰다. 그녀는 성인의 계시를 받았다는 신비주의자로, 종종 남성 복장을 했고, 자신이 프랑스에서 영국을 몰아내라는 신의 명령을 받았다고 믿었다. 잔 다르크는 프랑스군의 사기를 북돋아 1429년 오를레앙에서 영국군을 대파함으로써, 어린 왕 샤르 7세의 왕위계승을 도왔다. 1년 후에 북부 프랑스의 콩피에뉴 전투에서 영국의 프랑스인 동맹인 부르고뉴 공작에 맞서 군을 이끌다가 생포되었다. 그 후 재판에서 이단으로 선고받고, 1431년 19세의 나이로 화형에 처해졌다. 잔 다르크는 결국 프랑스에서 추방당한 영국군의 모든 적들에게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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