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소포타미아
인류 문명의 새벽을 알리면서, 고대 문명은 인상적인 도시나 미술품, 건축물로 장식된 제사센터(종교적인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신전, 기단, 비석 등의 복합건물로, 고고학에서 특별히 쓰이는 용어다)를 건설했다. 모든 문명에는 공공사업이나 군사작전을 위해 수천 명을 동원할 만큼 강력한 통치자가 있었다. 대부분 글자를 이용해 자료를 기록하고, 법전을 편찬하며, 지혜와 구전 지식을 문헌의 형태로 남겼다. 인류 최초의 문명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만나며 비옥한 범람원을 형성하던 남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다. 이곳의 수메르인은 건기에 수로를 파서 거주지까지 강물을 끌어왔다. 관개시설을 구축하고 유지하려면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했다. 이 시설을 통해 새로운 수메르 도시에서 교역에 종사하는 상인과 장인까지 부양할 만큼의 잉여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었다. 남는 곡물은 신전에 보관했고, 서기가 곡물 다발 등 공통된 단위를 그림문자로 그려 양을 표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문자는 검토판에 뾰족한 침으로 새기는 추상적 문자, 즉 설형문자로 진화했다. 수메르 서기들은 이 문자로 장부뿐 아니라 법과 구전설화를 새겨 후대에게 문명의 기록을 남겼다. 기원전 2900년이 되자, 수메르 도시들은 인근 마을까지 지배하는 도시국가로 성장했다. 우르와 우르크처럼 주민이 5만 명이 넘는 경쟁 도시국가들의 전쟁인 막대한 소실을 초래했다 결국 수베로는 기원전 2334년에 북쪽의 페르시아 만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던 아카드의 사르곤 왕에게 정복당했다. 사르곤 왕조는 단명하고, 그 뒤를 메소포타미아의 통치자들이 계승했다. 그중에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고, 영토에 적용되는 법을 성문화했던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이 있었다. 그가 건설한 바빌로니아 제국은 기원전 1595년에 북서쪽에서 침입해 온 히타이트족에게 무너졌다. 기원전 1200년경 히타이트족의 몰락으로 이 지역에 공백이 생겼고, 이는 다시 철제 무기를 휘두르며 철권통치를 서슴지 않던 아시리아인으로 채워졌다. 기원전 612년에는 바빌로니아인이 아시리아인을 물리치고 세력을 회복했다. 예루살렘을 기습해 가며 유대인 포로를 바빌론으로 끌고 왔지만, 기원전 539년 카루스 대왕이 이끌던 페르시아가 이 일대를 점령하며 북인도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세계 최대의 제국을 형성하자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중동은 어떤 곳인가?
중동은 두 개의 대륙에 걸쳐 있기 때문에 각종 사상, 군대, 이주민, 상인들이 오랫동안 이 지역을 거쳐 갔다. 고대에 이 지역은 비옥한 초승달지대로 문명의 요람이자 유대교와 기독교의 발상지였다. 중세에는 이슬람교를 탄생시켰다. 현대에는 무슬림이 압도록인 이 지역에 이스라엘이 수립되고 방대한 석유 매장고 발견되면서, 중동은 세 개의 화약고로 떠오르게 되었다.
함무라비 법전
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왕조 때 편찬된 법규집으로, 바빌로니아 마르두크 신전 안의 돌기둥에 기록되었다. 이것은 1901년에 발견되었다. 현대적 기준으로 볼 때 함무라비 법은 가혹한 편이다. 일례로 '남편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함께 누워 있다가 붙잡히면, 그들을 묶어서 물속에 던지다'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법을 기록한 행위 자체는 사람들을 자의적인 처벌에서 보호하는 데 기여했다. 만약 피고가 공정한 판결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함무라비 왕에게 호소할 수 있었다. 함무라비 왕은 돌기둥에 새겨진 법전의 일부에 이런 구절을 포함시켰다. '억울하여 할 말이 있는 자는 내 조각상이 서 있는 곳으로 와서 신중히 읽어보라.'
2. 이집트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지역 중 하나였다. 매년 여름 몬순비가 내려 나일 강이 불어나고 주변 농지로 범람하여 비옥한 토사층이 침전되었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이 강을 따라 정착했고 밀과 보리를 경작하ㅕ 많은 파피루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원전 3000년경에 상이집트의 왕이 나일강 삼각주로 군대를 파견해 하이집트를 정복했다. 이 왕조를 필두로 이후 3천 년에 걸쳐 30개가 넘는 왕조가 이 땅을 지배했다. 테베의 통치자는 기원전 2050년경에 이집트 중왕국시대의 막을 열었다. 이집트 군대가 누비아 대부분을 정복하던 확장기였다. 테베의 군주는 기원전 1630년경 힉소스 전사들의 침입도 물리쳤다. 테베는 이집트가 권력의 정점에 달했을 때 신왕국의 수도로 부상했다. 람세스 2세 같은 신왕국의 통치자는 히타이트족이나 기타 중동의 경쟁국을 공격했다. 그러나 기원전 1000년쯤이 되자 이집트는 세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이후 수 세기 동안 외부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파라오는 어떤 존재인가?
나일 강 유역의 관개시설 덕분에 이집트 농부들은 경작지를 확장하고, 사체나 통치자 등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했다. '거대한 집'이라는 뜻의 강력한 통치자인 파라오는 곡물 형태로 세금을 징수하고 군사작전과 공공사업을 위해 군사와 노동력을 징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파라오는 왕과 그의 성을 동시에 의미하게 되었다. 기원전 2700년경 이집트는 구왕국이라는 최초의 권력과 ㅏ번역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고, 이는 기원전 2500년경에 완공된 기자의 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왕릉으로 표시된다. 피라미드는 태양신 라와 동일시되었던 파라오의 원대한 야망을 상징한다. 왕실 서기가 상형문자로 기록한 문서에서는 파라오의 영혼이 피라미드에서 솟아올라 '라의 눈인 하늘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미국 달러화 지폐의 이미지에 영감을 주었다.
미라란 무엇인가?
이집트인은 떠돌던 영혼이 다시 돌아갈 사체가 없으면 사라지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죽은 후에도 사체를 보존했다. 죽은 사람의 몸에서 부패하기 쉬운 내장을 제거하고 나머지를 방부 처리하여 미라로 만드는 것은 본래 왕족에게만 국한된 관습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패를 억제하기 위해 죽은 자를 모래에 묻었다. 그러나 후대에는 사체를 미라로 만든 후, 다시 관에 묻는 사례가 많아졌다. 그 관에는 사악한 기운을 쫓고 영혼을 안전하게 하늘로 인도한다는 주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예는 다음과 같다. '나는 내 배를 타고 무사히 향해할 것이다', '나는 하늘을 가로지를 때 영원의 군주가 된다' 등이다. 미라로 만든 동물은 고양이 여신인 바스테트 같은 신에 대한 제물로 땅에 묻었다.
람세스 2세
이집트 왕이 수많은 아내와 후손을 거느린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었으나, 람세스 2세는 오랜 통치기간 동안 100명이 넘는 자식을 얻을 만큼 과했다. 그의 첫 번째 아내인 네페르타리 왕비는 람세스의 여동생을 포함해 수많은 후궁들과 함께 그를 공유해야 했다. 후궁들은 하렘이라는 규방에서 함께 살면서 직물 짜기 같은 유용한 일을 했다. 기원전 1285년 시리아의 카데쉬에서 히타이트족을 격파한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 왕의 장녀와 약혼하여 양국 간 평화 관계를 맺었다. 그 당시 람세스는 신에게 그녀를 안전하게 이집트로 데려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당신이 점지해 주신 기적이 제게 당도할 때까지 비도, 찬바람이나 눈도 내리지 말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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